그래미의 벽과 K팝의 진화, 그리고 아시아 음악계의 역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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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음악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그래미 어워즈의 오프닝 무대, 블랙핑크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합작한 ‘APT.’가 울려 퍼지자 객석에 자리한 세계적인 스타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시상식의 포문을 화려하게 열어젖힌 이들의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엄청난 화제였지만, 아쉽게도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를 비롯한 주요 부문 트로피를 품에 안지는 못했다. 비록 수상은 불발됐으나 로제가 이번 그래미에서 3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것은, 제65회 시상식 당시 콜드플레이의 앨범에 참여해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올랐던 방탄소년단(BTS)의 K팝 아티스트 최다 노미네이트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한 유의미한 발자취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위 퍼포머들에게 쏟아지는 동안, K팝 음악 산업의 이면에서 묵묵히 사운드를 빚어내던 창작자들은 마침내 그래미의 견고한 벽을 뚫어냈다. 넷플릭스 인기 애니메이션 영화 ‘K팝 걸스!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삽입곡 ‘Golden’이 ‘최우수 영상 매체 작곡상(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을 거머쥔 것이다. 이 상은 곡을 직접 만든 창작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예로, ‘Golden’을 프로듀싱한 EJAE, 테디(TEDDY), 24(서정훈), IDO(이유한, 곽준규, 남희동)가 수상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과거 황병준 감독이나 한국계 미국인 영인(Yongin) 등 엔지니어들이 그래미에서 수상한 전례는 있지만, K팝 작곡가와 프로듀서진이 본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 그래미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다. 사실 ‘Golden’의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흥행 돌풍에 힘입어 K팝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 100’과 영국 오피셜 차트 ‘톱 100’에서 동시에 정상을 차지하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곡 자체의 파괴력이 워낙 압도적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영미권 메인스트림에서 K팝의 위상이 퍼포머를 넘어 프로덕션 역량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현지 음악 시장 역시 그들만의 굵직한 축제를 통해 씬의 활력을 증명하고 있다. 글로벌 무대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6월 13일, 도쿄 고토구 도요타 아레나에서는 열도 최대 규모의 글로벌 음악 축제인 제2회 ‘뮤직 어워즈 재팬(Music Awards Japan)’이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올해 이 시상식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상인 ‘올해의 아티스트(Artist of the Year)’의 영예는 폭넓은 대중성과 탄탄한 음악성을 입증한 밴드 미세스 그린 애플(Mrs. Green Apple)에게 돌아갔다.

그래미 무대를 뒤흔든 로제의 폭발적인 에너지, 마침내 세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에서 작곡 능력을 인정받은 K팝 프로듀서들의 쾌거, 그리고 일본 현지 씬을 제패한 미세스 그린 애플의 약진까지. 이 일련의 흐름들은 단순히 각기 다른 시상식의 결과표가 아니라, 아시아 기반의 아티스트와 창작자들이 글로벌과 로컬을 넘나들며 대중음악의 지형도를 어떻게 팽창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