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적도 무용지물… ‘AI 거품론’과 금리 공포에 주저앉은 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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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시장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3분기 실적과 4분기 전망치(가이던스)를 내놨지만, 정작 뉴욕증시는 웃지 못했다. 호실적 발표 직후 열린 첫 정규장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2% 이상 급락하며 차가운 투자 심리를 여실히 드러냈다. 시장 전반에 퍼진 인공지능(AI) 고평가 논란과 12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하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엔비디아가 쏘아 올린 호재마저 집어삼킨 형국이다.

오전 상승분 모두 반납한 엔비디아

20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전날 장 마감 후 발표된 엔비디아의 어닝 서프라이즈가 AI 거품론을 잠재우는 듯했고, 한국의 코스피를 비롯해 일본 닛케이, 유럽 주요 증시가 일제히 상승하며 훈풍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주가는 장 초반 5%대까지 치솟으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이 상승세는 오전을 넘기지 못했다.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며 주가는 급격히 미끄러졌고 결국 3.2% 하락 마감했다. 대장주의 부진은 기술주 전반으로 확산됐다. 마이크로소프트(-1.6%), 아마존(-2.5%), 테슬라(-2.2%)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날 다우 평균은 0.8%, S&P500 지수는 1.6%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의 장세를 두고 “올해 들어 가장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 날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돈 먹는 하마 된 빅테크”… 수익성 의구심 증폭

월가에서는 이번 하락장의 핵심 원인으로 다시 고개를 든 ‘AI 회의론’을 지목한다. 막대한 인프라 투자 비용을 정당화할 만큼 AI가 실제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지에 대해 투자자들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최근 테크 팟캐스터 드와르케시 파텔과의 대담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AI 도입으로 인해 과거의 고수익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자본 집약적인 하드웨어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핵심 지표로 매출 성장세가 아닌 투하자본이익률(ROIC)을 꼽으며, “자본 투입이 늘어나면 ROIC는 필연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고, 이는 장기적으로 주가에 하방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AI 투자가 향후 5년 내에 실질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지가 시장의 핵심 질문이 되었다”고 보도하며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전했다.

안갯속 금리 전망과 치솟는 변동성

불안한 거시경제 지표도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고용 통계는 일자리 증가세와 높은 실업률이라는 엇갈린 신호를 동시에 보내며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고용 시장의 방향성이 모호해지자 12월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흔들리고 있다.

연준 내 매파적 발언도 부담이다.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는 “현재 통화 정책이 제약적이지 않다”며 금리 동결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실제로 전날 공개된 연준 회의록에서도 다수의 위원이 금리 동결 의견을 내비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복합적인 악재 속에 시장의 공포 심리는 극에 달하고 있다. 월가의 공포 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약 28선까지 치솟으며 최근 5일 사이 20% 가까이 급등했다. 당분간 증시가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